영등포아트홀 시리즈Q 주제극장 <붉은 낙엽> - 의심으로 부식되어 가는 세상

 

안녕 대원들! 모두 기나긴 장마는 잘 이겨냈어? 창밖으로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서늘한 공기를 머금은 추리극이 생각나잖아. 그래서 준비했지! 이번 영등포아트홀 시리즈Q 공연 리포트에서는 영등포아트홀 상주단체인 극단 ‘배다’의 뜨거운 화제작, 추리소설 작가 토마스 H. 쿡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한 연극 <붉은 낙엽>을 소개하려 해. 이번 리포트를 맡은 발신인 압생트 & 미도리와 함께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 속으로 GO GO!
 
<붉은 낙엽>은 아동 실종 사건에 휘말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이야기는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지미의 아버지인 에릭의 시점으로 진행돼. 과연 누가 범인일까 추리해가는 과정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서 피어나는 날카로운 의심과 인간의 감정은 이 공연을 더욱 밀도 높은 작품으로 만들어줘.

 

&copy; 영등포아트홀

 

토마스 H. 쿡의 동명 소설, <붉은 낙엽>을 각색한 연극
동아연극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서울연극제를 휩쓴 화제작

영등포아트홀 기획공연 <붉은 낙엽>

 

공연기간 : 2022.08.12(금) ~ 2022.08.15(월)
공연장 : 영등포아트홀
관람연령 : 14세 이상
러닝타임 : 120분
원작 : 토마스 H. 쿡  
연출 : 이준우
출연 : 박완규, 김원정, 장석환, 권태건, 선종남, 구도균, 박기덕,
하지은, 이의령, 장승연
작품개발: 우란문화재단

 

&copy; From.21C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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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웨슬리의 작은 마을.
평화로운 가을을 보내고 있는 에릭의 가족에게 이웃집 카렌의 어린 딸,
에이미의 실종 소식이 전해진다.
실종 전날 밤까지 카렌의 집에서 에이미를 돌보았던
에릭의 아들 지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다.
믿음과 의심의 줄다리기 속, 에릭의 집안을 물들여가는 붉은 낙엽의 흉흉한 적조.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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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압생트와 미도리는 <붉은 낙엽> 관극을 위해, 그날 따라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을 뚫고 영등포아트홀로 향했어. 추리극과 어울리는 날씨에 사전에 읽어 본 <붉은 낙엽>의 시놉시스가 떠오르면서, 여러모로 오늘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

 

&copy; From.21C 촬영

 

<붉은 낙엽>도 <세.느.낌>과 마찬가지로 스페셜 이벤트를 진행 중이었어. 그 덕분에 티켓과 함께 작품의 감성이 느껴지는 메모지를 받을 수 있었지.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에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 해시태그 후기 이벤트도 진행 중이었는데 추첨을 통해 MD로 판매되고 있는 프로그램 북과 동명의 원작 도서를 증정해준다고 해. 이벤트에 당첨되긴 힘들 것 같다고? 그런 걱정 하지 말라는 듯 이날 로비 곳곳엔 <붉은 낙엽>의 원작 도서가 배치되어 있었어. 로비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잠시 소설을 읽으니 극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두근거리더라. 그 덕분에 연극에 더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발신인들이 공연을 보러 갔던 날은 전석 매진이어서 로비가 굉장히 활기 넘치는 분위기였어. 다시금 <붉은 낙엽>이 주요 연극상을 휩쓴 화제작이란 걸 실감할 수 있었지.
 
드디어 객석으로 입장! 아직 공연이 시작되지 않은 무대에는 에릭의 집을 철저히 가리고 있는 하얀 커튼이 눈에 띄었어. 저 커튼이 열리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마치 상자 속 물건을 맞추는 게임을 하는 기분이라, 공연 전까지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

 

#스포주의!

 

“처음 이 집을 샀을 때, 간절히 원했던 건 절대로 금이 가지 않는 집,
바위처럼 단단하고, 아이가 뛰어놀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집이었다.”

 

공연은 에릭이 무대를 가렸던 흰 커튼을 걷으면서 시작돼. 그러자 붉은 낙엽이 곳곳에 떨어져 있는 에릭의 집이 드러나. 어딘가 외로워 보이는 집 안에서 늙은 모습의 에릭은 두 개의 가족사진을 들고 대사를 이어나가지. 한 장엔 어린 시절 자신의 가족이, 나머지 한 장엔 자신이 가장이 된 때의 가족이 담겨 있어. 이를 바라보는 에릭의 시선에선 강한 그리움과 후회, 슬픔이 느껴져. 과연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어째서 에릭은 두 가족사진을 바라보며 ‘거짓’이라고 말하는 걸까. 발신인들의 머릿속에 궁금증이 피어나던 순간! 사진을 매개로 무대의 시간은 과거로 넘어가.

 

&copy; 영등포아트홀

 

과거로 돌아간 그 공간에는 젊고 생기있어 보이는 에릭과 그의 똑똑한 아내 바네사, 그리고 소심하지만 순박한 아들 지미가 살고 있어. 지미는 아르바이트 겸, 옆집의 8살 소녀 에이미를 돌보곤 해. 에이미의 어머니 카렌은 혼자 에이미를 양육하고 일도 하느라 바쁠 때면 새벽 늦게 돌아오기도 하거든. 지미가 유독 늦게 귀가한 그날 역시, 에이미를 돌봐주고 돌아온 밤이었어.

 

문제의 사건은 다음 날 시작돼. 에릭의 집으로 에이미가 실종되었다는 카렌의 연락이 온 거야. 카렌은 에이미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지미를 의심하고 그와 직접 연락하길 원하지만 지미의 부모는 아들을 보호하고자 두 사람의 접촉을 가로막아. 이윽고 경찰까지 지미를 조사하기 위해 에릭의 집에 찾아오지.
 
자신의 아들을 믿으려 했던 에릭은 이미 지미를 범인으로 낙인 찍은 경찰과 카렌의 시선, 그리고 수사를 진행하면 할수록 발견되는 아들에 대한 의심쩍은 단서들에 의해 혼란스러워 해. 동시에 에릭이 만들고자 했던 절대 금가지 않는 집은 이 사건을 계기로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 에이미를 재우고 아무 이유 없이 운동장에 들렀다가 집으로 걸어왔다는 아들의 말을 믿으려 하는 에릭. 

 

그러나 그날 새벽, 지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즈음 에릭이 정원 근처에서 목격한 헤드라이트 불빛과 폐차장에서 발견된 에이미의 잠옷으로 인해 아들의 말이 점점 거짓말로 들려와. 여러 단서가 추가로 발견될수록 에릭의 시점에서 사건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지미를 범인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모든 단서가 날카롭고 명백하게 지미를 가리켰거든.

 

&copy; 영등포아트홀

 

“난 진실을 알아야 해.”
“진실? 의심 아니고?”

 

붉은 낙엽이 쌓여갈수록 집의 민낯은 더욱 드러나고 의심은 온 집안을 뒤덮기 시작해. 아들에 대한 의심은 오래전부터 해결되지 않은 채 마음속에 묻어왔던 에릭의 어린 시절 가정사까지 번져 그의 삶의 모든 걸 휩쓸어. 지금 풀어야 할 아내와 아들에 대한 의심, 그리고 해결되지 않은 아버지와 형과의 과거사까지. 가족의 말과 행동에 대한 불신 속에서 의심은 에릭의 세상을 점점 부식시키고,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기가 되어 주변 인물은 물론 그들과의 관계마저 엉망으로 만들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도 많이 혼란스러웠어.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의 단서를 거짓으로 만드는 반전이 끊임없이 나와서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 힘들었지. 에릭의 의심이 관객석까지 뒤덮자 우리의 판단력도 점차 흐릿해져 갔어.
 
시간이 흘러 에릭의 모든 의심을 비웃듯이 에이미 실종 사건은 카렌의 집을 방문했던 피자 배달원이 저지른 납치였다는 게 밝혀지고, 에이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돼. 하지만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이들 간의 감정의 골은 에릭의 형인 워렌과 지미 그리고 카렌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바네사와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만들었지. 결국, 의심이 모든 것을 파멸시킨 거야.

 

© From.21C 촬영

 

공연을 보는 내내 ‘의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 그리고 의심은 간혹 좋은 예감이 되어 불길한 일을 막아주기도 하지만 과할 경우, 우리의 눈과 귀를 막는다는 것도 깨달았지. 그저 어린아이를 돕고 싶었던 순박한 10대 청소년을 의심으로 공격한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죄책감도 들었어.

 

또한 “과연 현실에서도 나의 섣부른 의심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평소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지. 엄청난 사건이나 범죄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멋대로 판단할 때가 많은 것 같아. 내가 말만 하면 왠지 활발하던 메신저가 멈추는 듯한 느낌, 아는 동생이 유독 나한테만 버릇없게 구는 것 같은 기분, 날 귀찮아하는 것 같은 연인의 표정…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의심은 몇 가지 단서와 합쳐지면서 점점 분명한 사실이라고 인식하게 돼.

 

그렇지만 막상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진실은 생각과 꽤 다를 때가 많았어. 이번 연극을 통해 나의 섣부른 의심으로 부식된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고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내게 벌어지는 일들을 바라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됐지. 의심을 완전히 멈추는 건 어렵겠지만, 차분히 현재 상황을 바라보고 현명한 대처를 한다면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비극이 닥쳐올 일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copy; 영등포아트홀

 

고뇌를 겪는 복잡한 심리를 표현한 세트 역시 인상 깊었어! 실외의 정원과 실내의 여러 방이 함께 보이는 구조는 극의 흐름에 따라 하나처럼 쓰이기도, 분리된 공간처럼 쓰이기도 해. 이를 통해 무대 위에서 고조되는 이야기와 교차하는 감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 인터미션 없이 진행된 120분 공연인데도 무대 위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지! 또 늦가을이라는 극의 배경에 맞게,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 쌓여가는 검붉은 나뭇잎이 기억에 남아. 처음엔 바닥을 조금 덮을 정도로 떨어져 있던 낙엽은, 에릭의 의심이 격해질수록 눈에 띄게 모든 걸 덮어가지. 붉은색이 주는 심리적 효과에, 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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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 영등포아트홀

 

영등포아트홀의 시리즈Q 기획공연은 각 공연마다 하나씩 질문을 제시해 관람 이후까지 연결되는 관극 경험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어. 공연을 보러 간 당일, 영등포아트홀에서는 사전 이벤트로 받은 질문에 대한 관객들의 답변을 공연장 벽면에 랩핑해둔 상태였지. 예상보다 다양한 답변들에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고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보았을 때는 공감이 가는 답변들도 있었어.
 
아래에는 작품이 전하는 질문에 대한 발신인들의 답변을 담아봤어.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시리즈Q 기획공연들의 질문은 평소 고민해보지 못한 부분을 짚어주는 것 같아서 늘 새롭다고 느껴.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공연을 한층 더 오래 기억하게 되고 동시에 더욱 성장하는 느낌이랄까? 대원들도 함께 질문에 답해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어!

 

&copy; From.21C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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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의 Q,
의심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발신인 압생트
의심은 [불확실함]에서 시작된다.

 

잘 생각해보면, 지미를 향한 에릭의 의심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지미에 대한 인식이 불확실해지면서 시작된 게 아닐까? 간혹 내가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지인이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줄 때, 지금까지 쌓아왔던 인식이 어긋났다고 느끼잖아. 앞으로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어지기도 하지. 그렇게 시작된 타인에 대한 혼란이 갑작스러운 사건과 만나게 된다면? 흔들리는 믿음 속에서 나는 자연스레 의심을 시작할지도 몰라.

 

발신인 미도리
의심은 [그럴싸한 증거]에서 시작된다.

 

의심은 항상 그럴싸한 증거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소문도, 알게 된 순간 왠지 그럴싸한 증거를 발견하게 돼. '어쩌면 그 말이 진짜인지도 몰라.'하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때맞춰 더 의심스러운 정황이 모습을 드러내고, 결국 진실이라고 믿게 되지. 극 중에서도 지미가 에이미를 돌봤다는 사실, 몰래 운동장에 들렀다는 사실 때문에 정말로 지미가 범인일 거라고 의심하게 되어버리잖아. 연극을 보면서, 남에게 안 좋은 평가를 할 때 유독 섣부르게 뭔가를 그럴싸한 증거라고 믿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 사소한 행동과 말을 오해하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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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프리씨의 영등포아트홀 시리즈Q 기획공연 리포트도 재밌게 읽었어? 리포트를 볼수록 자연스레 관심이 생기는 극단이 있을 텐데… 연극 <세.느.낌>에 이어 <붉은 낙엽>까지! 영등포아트홀 무대를 통해 관객들에게 멋진 경험을 선사해준 극단 ‘배다’말이야~😎

 

이미 핫한 극단이지만, 프리씨도 두 번의 공연 리포트를 진행하면서 ‘배다’를 향한 관심이 더욱 커졌어. 이제는 9월 말에 시작될 신작 인큐베이팅 공연을 기다리는 중! 공연장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공연을 펼친다고 하니 더 기대돼.

마지막으로 깜짝 소식! 프리씨와 극단 ‘배다’가 특별한 만남을 준비 중이라는데…!(두둥) 다가오는 특집호를 기대하시라!  

 

 

영등포아트홀의 금전적 지원을 받아 제작된 콘텐츠입니다.
시리즈Q 브랜딩 디자인: 이스트스튜디오
사진 제공 : 영등포아트홀 , 사진촬영 : 박태양

 

 

공연 트렌드 레터 From.21C가 궁금하다면?🔻

2022.08.26 - [From.21C] - 공연의 미래를 꿈꾸다, From.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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